11, 2017
노원구 하계동
이윤탁 한글영비-보물 제1524호
이 비석은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이 부친인 이윤탁(李允濯)의 묘를 모친인 고령(高靈) 신씨(申氏)의 묘와 합장하면서 1536년에 묘 앞에 세운 묘비이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한글과 한문으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특징적 가치는 비석 왼쪽 면에 쓰여진 한글 경고문인데, 우리나라 비문으로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문화재청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봄, 이제 시작이다.
March 11
봄이 오다.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나라로.
#민주주의 #촛불혁명 #새로운_대한민국 #시민혁명
#Democracy #candlelight-vigil #Neue Coree #Pepole's Revolution
봄이 오다.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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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7일 월요일
근대 문화유산 박노수 가옥
7, 2014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
북촌과 더불어 서촌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지역으로 인왕산 수성동 계곡 아래 옥인동, 통의동, 필운동 일대의 지역을 말한다. 필운동 백사 이항복 집터와 함께 청운동 장동김씨(안동김씨) 등 조선의 지배세력이 살았던 곳이며 중인계급이 많이 살던 곳이다. 인왕제색도로 유명한 겸재 정선이 살면서 활동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이상, 청전 이상범, 이중섭 등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곳이다.
박노수 가옥은 친일파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윤덕영은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이완용과 함께 한일합방 조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의정부찬성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938년대에 지은 이 집은 2층 벽돌집이다. 1층은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되어 있다.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 외에 중국식 수법이 섞여 있고 안쪽에 벽난로를 3개나 설치하는 등 호사스럽게 꾸며 놓았다.
1973년,한국화가인 남정 박노수 화백이 소유하여 2011년도 말까지 거주하였다. 2011년 박노수 화백이 본인의 작품과 함께 종로구에 기부하여 현재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남정 박노수는 충남 연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청전 이상범,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하였다. 박노수 화백은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신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한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관에 걸린 현판은 추사의 글씨로 여의륜이다. 추사는 통의동 백송이 있던 곳에서 살았다. 가옥 내부에는 수석, 석등 등 남정이 평생 모았던 소장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관으로 인해 이 지역 땅 값이 세 배나 올랐다고 한다. 건물 내부는 촬영 금지라 찍지 않았다.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
북촌과 더불어 서촌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지역으로 인왕산 수성동 계곡 아래 옥인동, 통의동, 필운동 일대의 지역을 말한다. 필운동 백사 이항복 집터와 함께 청운동 장동김씨(안동김씨) 등 조선의 지배세력이 살았던 곳이며 중인계급이 많이 살던 곳이다. 인왕제색도로 유명한 겸재 정선이 살면서 활동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이상, 청전 이상범, 이중섭 등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곳이다.
박노수 가옥은 친일파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윤덕영은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이완용과 함께 한일합방 조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의정부찬성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938년대에 지은 이 집은 2층 벽돌집이다. 1층은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되어 있다.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 외에 중국식 수법이 섞여 있고 안쪽에 벽난로를 3개나 설치하는 등 호사스럽게 꾸며 놓았다.
1973년,한국화가인 남정 박노수 화백이 소유하여 2011년도 말까지 거주하였다. 2011년 박노수 화백이 본인의 작품과 함께 종로구에 기부하여 현재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남정 박노수는 충남 연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청전 이상범,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하였다. 박노수 화백은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신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한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관에 걸린 현판은 추사의 글씨로 여의륜이다. 추사는 통의동 백송이 있던 곳에서 살았다. 가옥 내부에는 수석, 석등 등 남정이 평생 모았던 소장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관으로 인해 이 지역 땅 값이 세 배나 올랐다고 한다. 건물 내부는 촬영 금지라 찍지 않았다.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고
5,2012
경복궁
노무현 3주기 추모 사진전을 보기위해 세종문화회관 갔다가 경복궁을 들렀다. 근정전에서 세종조의 회례연을 무대예술로 만든 작품을 공연한다. 5월 12,13일 시간은 오후 4시부터(국립국악원 세종조 회례연).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공연은 못 보고 대신 경복궁 광화문과 홍예문 마당에서 펼쳐진 수문장 교대의식을 볼 수 있었다. 영국 왕실 근위병 교대의식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가까운 덕수궁에서도 수문장 교대의식을 볼 수 있다. 대신 복장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경복궁은 조선 초기 복식이고 덕수궁은 영,정조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경복궁 수문장의 복식이 훨씬 화려하고 근사해 보인다. 아래 사진 뒷모습이 보이는 이가 수문장이다. 철릭(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넓은 소매가 달린 무관의 공복)에 전복을 입고, 대나무로 만든 모자인 홍죽립을 쓰고 등채를 들고 있다.
교대의식 행사 참여자들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계약직으로 채용한 이들이라고 한다. 급여도 많지 않고 일도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정규직원으로 채용해서 행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세한 내용은 수문장 사이트를 통해 알 수 있다. sumunj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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