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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7일 금요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7,2015
창덕궁 정전, 인정전(仁政殿)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외국인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죽은 건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궐의 전각들도 마찬가지다. 후손들이 살지 않는 고택들도 마찬가지다. 사람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화석화된 느낌.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조선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렀다. 조일전쟁(1592~1598년)으로 모든 궁궐이 불타고 이후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인정전이 재건되고 1865년(고종 2년) 경복궁 중건할때까지 정궁 역할을 했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돈화문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진선문


2015년 7월 24일 금요일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낙선재 궁스테이 반대한다.

7,2015
낙선재, 창덕궁


최근 논란이 되는 궁스테이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절대 반대다. 문화재는 원형대로 보존하고 후대의 사람들도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낙선재를 숙소로 사용하려면 전기시설을 설치하는 등 대수선을 해야한다고 한다. 목조건물인 낙선재에  혹시 불이라도 난다면 일순간 다 타버린다. 이미 우리는 숭례문이 불타는걸 지켜봐야 했다.

문화재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를 위한 궁스테이를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우리 문화재를 알릴 기회가 있다고 본다.

창덕궁의 낙선재는 단청을 안한 사대부주택 형태이다.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하나의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통칭하여 낙선재라 부른다. 낙선재는 1847년(헌종 13년)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졌다.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등이 1963년부터 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다. 아름다운 화계(꽃계단)와 꽃담, 다채로운 창살들이 돋보인다. 낙선재는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석복헌과 수강재는 상당 부분이 변형되어 있다.

 ‘낙선(樂善)’은 ‘선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맹자』에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으로 선을 즐겨 게으르지 않는 것[樂善不倦]을 천작(天爵)이라고 한다.”고 했다. 임금이 이 곳에서 인의와 충신을 지키며 선을 즐겨 하늘의 작록(爵祿) 을 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낙선재’ 현판은 청나라때 문인인 섭지선(葉志詵, 1779~1863년) 의 글씨이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기억

기억

8,2010

창덕궁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 찾아왔다.

 

 

2010년 9월 25일 토요일

창덕궁 연경당

창덕궁 연경당

8,2010

연경당,창덕궁

 

연경당은 순조28년(1828)당시 왕세자였던 익종의 청으로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궁궐안에 지은 이른바 99칸 집이다. 순조의 왕세자인 익종은 순조9년에 태어나 순조27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순조30년(1830)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아들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왕으로 추종되어 익종으로 종묘에 봉향되었는데 연경당은 바로 익종의 대리 청정 때 창덕궁 안에 지은 것이다. 창덕궁 안에 지은 유일한 민가형식의 건물로 사랑채의 당호(堂號)가 연경당(演慶堂) 이다.

 

연경당은 진장각(珍藏閣) 옛터에 세워졌다. 창덕궁에 있는 다른 건물이 단청을 한 데에 비해 연경당은 하지 않았다. 매우 단촐하고 아담하여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 형태를 잘 보여준다.

선향재

 

 

사랑채 동쪽에는 색다른 건물이 위치해 있다. 선향재는 좋은 책 향기가 가득한 곳이란 의미다. 서향으로 지어진 건물로 여름철에 햇볕이 강하게 들어온다. 그래서 기존의 건물 앞에 기둥을 또 세우고 지붕을 올린 뒤에 그 위를 동판으로 씌운 차양으로 건물을 보호하였다. 차양은 조선말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강릉의 선교장의 열화당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서재나 손님을 대접하는 응접실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창덕궁 희우정에서

8,2010

창덕궁에서

 

농경사회인 조선왕조에서 비는 매우 중요하다. 기우제와 관련된 전각인 희우정은 주합루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다.

 

주합루 서남쪽에 위치한 이 건물은 원래 인조 23년에 초당으로 세워 취향정이라 했으나 숙종 16년(1690)에 가뭄에 기우(祈雨)하여 비가 내리니 희우정이라 이름을 바꾸고 초당이던 정자를 기와로 바꾸었다 한다.

 

태풍 지나간 후 연일 비가 내린다. 기우제를 지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