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건봉사 능파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건봉사 능파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4년 2월 5일 수요일

고성 8경 금강산 건봉사

12, 2013
건봉사,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 고개 너머 강원도 고성군의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몇 차례 중수가 이어지다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1994년 이후 대웅전, 팔상전, 종각 등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건봉사 능파교는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 스님에 의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는 나옹 스님이 중수하면서 다시 건봉사라 이름하였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을 갖추고 있어 홍예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건봉사 웹사이트에 의하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그 자체가 불신(佛身)과 똑같이 여겨지므로 불상을 조성하지 않고 진신사리만 모시는데 이러한 사찰을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이 적멸보궁 뒤쪽에는 석가모니 진신치아사리탑이 세워져 있는데 선조 38년(1605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아 온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경종 14년(172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최근에 새로 지은 "적멸보궁" 뒤편 오른쪽 앞에 건립되어 있는 치아사리탑은 천고의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방현의 지대석에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구분한 팔각원당형의 부도입니다. 기단부는 팔각형으로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을 완전히 구비하고 있는데 하대석에는 복련, 상대석에는 양련 등의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은 높이 53cm의 구형인데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옥개석은 팔각형으로 낙수면과 상면이 별도의 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개의 돌로 조각된 상륜부는 연국문대, 편구형부재, 상단에 여의두문이, 하단에 화문이 새겨진 부재가 있고 사리탑의 전체 높이는 1.6m입니다. 지금의 적멸보궁은 1994년 5월 25일 준공하였습니다.


건봉사 대웅전

적멸보궁

건봉사 산신각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강원도 고성에 가면 만나는 건봉사지

진부령 고개 너머 강원도 고성군은 휴전선과 맞닿은 최북단 지역이다.  조용한 휴양지인 화진포 호수와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김일성과 이승만 별장이 있는 아늑한 곳이다. 겨울 스포츠를 원한다면 진부령의 알프스 스키장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겠다.

고성의 바닷가에 이르기 전에 만나는 건봉사는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 등 9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렸던 한국 4대 사찰 중 한 곳으로 거진읍 냉천리 남쪽에 위치하며 신라 법흥왕 7년(520년) 아도화상이 원각사로 창건한 후 고려 공민왕 7년(1358년) 나옹화상이 건봉사로 중수하였다.

조일전쟁(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사명대사가 일본에 강화사절로 갔다가 왜군이 통도사에서 약탈해 간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되찾아 와서 건봉사에 봉안한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한국전쟁(6.25)으로 거의 소실되었고 건봉사지와 사찰의 복원이 진행중이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남은 불이문을 지나면 대웅전과 적멸보궁이 눈에 들어오는데 모두 근래에 다시 세워진 전각들이다.  

건봉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2층 누각에 ‘금강산 건봉사’라고 쓴 현판이 보인다. 금강산 4대 사찰은 유점사, 표훈사, 장안사, 신계사라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금강산 건봉사’라고 했다고 한다.
금강산 건봉사
이미지 출처: 진달래

절 입구의 능파교(凌波橋)는 4개의 석교중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그 규모도 가장 크고,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대웅전 바로 앞의 교량이기도 한다. 능파교(凌波橋) 신창기(新創記)에 의하면 1708년 조선숙종(朝鮮肅宗) 24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능파교는 새로 만들어져서 멋스러움이 없다.  아래 링크를 따라 가서 저 아래쯤에 복원해 놓은 능파교 사진이 나온다. 설악 비경에 가려진 고성의 참맛
이미지 출처 Link

건봉사가 다른 사찰과 구분되는 것은 해. 달. 가위. 동그라미 따위의 알 수 없는 바라밀 문양이 조각된 돌기둥이다. 바라밀은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수행단계를 일컫는 말인데 흔히 육바라밀과 십바라밀로 나뉜다고 한다. 건봉사의 바라밀 문양은 십바라밀의 각 단계를 상징적인 기호로 형상화한 것 이라고 하는데, 바라밀교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다른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은 아닌 것 같다.

빈 절터에 주춧돌만 보이고, 잡풀들이 군데 군데 보였는데 지금은 말끔해졌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복원해 제 모습을 찾더라도 수십,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야 부석사나 화엄사처럼 옛스러움이 묻어 나올 것 같다.

건봉사가 있는 고성으로 가려면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주문진, 양양, 속초를 거쳐 갈 수도 있는데, 길은 더 잘 정비되어 있지만, 시간은 좀더 걸린다. 아래 링크를 열면 가는 길을 자세히 안내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