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문(북문), 남한산성
남한산성이 지난 달 22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경기도 성남, 광주, 하남시에 걸쳐 위치한 남한산성은 맑은 날에는 서울 남산이 보이는 곳으로 군사적 요충이다.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의 온조 대왕 13년에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 와서 임진란(1592년) 이후 산성 수축 계획이 있었으며 인조반정(1623년) 이후 본격화 되었다.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인조는 도성인 한양으로 버리고 이곳으로 와 45일을 버티다 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만다. 남한산성은 1907년 탄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폐허가 되어 방치되다 1999년 부터 발굴,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 홍보 자료를 보면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등재 기준 (ⅱ), (ⅳ)에 충족되어 ▲ 병자호란 등 국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 ▲ 조선의 자주·독립의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수도로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 ▲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이 세계유산적 가치로 인정받았다.
또한 ▲ ‘완전성’ 측면에서 효과적인 법적 보호체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라는 단일 민간 전문기 관를 통해 보존 관리되고 있다는 점 ▲ ‘진정성’ 측면에서 성곽과 산성 도시는 충분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구성 요소로 하고 있고 다양한 사료에 의해 진정성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점이 결정적인 등재 요인으로 꼽혔다.문화재청 자료를 보면 남한산성에는 여러 유적이 있지만 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바깥쪽 앞면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건물의 규모는 1층은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2층 4면의 바깥기둥은 1층의 높은 기둥이 연장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96년에 유수 박기수가 다시 고쳐 세운 것으로 인조 2년(1624)에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남한산성 성곽 |
수어장대 |
수어장대 |
침괘정 |
우익문(서문) |
한남루(행궁 정문)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