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 대방 |
처음 만나는 일주문은 단청도 없고 흥국사 편액도 칠이 벗겨져 있다. 절 이름은 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뜻인데 쇠락의 흔적인가. 일주문을 들어서서 조금 올라가면 다른 절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의 건물이 나타난다. 대방이라고 한다. 조선 중,후기 왕실과 관련된 사찰에 나타나는 건물이다. 수유리 화계사에도 대웅전과 대적광전 사이에 대방이 놓여있다. 흥국사의 특징적인 건물로 근처에 있는 덕흥대원군묘를 참배하기 위해서 한양 도성에서 이곳을 왔다 가려면 당일로는 불가능해 숙소겸 법당으로 사용할 건물이 필요했다고 한다.
지난 6월 신문기사를 보면 흥국사 대방은 정토 염불 사상이 크게 성행하던 근대기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염불 수행 공간과 누·승방·부엌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추고 대웅전을 실제적·상징적 불단으로 삼아 염불 수행을 하도록 구성된 독특한 형식의 복합 법당으로 지난 1821년 건립됐으나 1878년 화재를 겪고 소실되면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이 대방은 기존의 단일 용도로 구성되던 전통적 법당 구성 방식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근대적 건축의 성립을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독특한 건축 형식과 공간 구성 및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 문화재로 등록하게 됐다”고 한다.
흥국사 일주문 |
국내에 흥국사란 이름을 가진 절이 여럿 있다. 가까운 고양에도 흥국사가 있고 여수에도 흥국사가 있다. 고양 흥국사는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가 자신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에 행차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묵었으며 이때 절 이름을 흥국사로 바꾸게 하고 직접 약사전의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후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여수 흥국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호국사찰로 조선조말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궁궐을 지었던 목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궁궐 목수들이 내려가서 흥국사를 지었다고 한다.
흥국사가 왕실의 원찰이라는 것은 대웅전 지붕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궁궐과 관련된 전각에서만 볼 수 있는 잡상들이 놓여있다. 잡상이란 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이는 와제(瓦製) 토우(土偶)를 말한다.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일러 잡상이라 하는데 이는 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土神)을 형상화하여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 한다.
흥국사 대웅보전 |
흥국사 만월보전 |
흥국사를 나와 덕릉고개 방향으로 100여 미터 오르면 덕흥대원군묘를 알리는 표지가 보인다. 덕릉고개에서 덕릉은 덕흥대원군묘를 말한다. 덕흥대원군은 조선 14대왕인 선조의 아버지다. 명종이 후사없이 죽자 중종의 7번째 아들인 덕흥군의 셋째아들 하성군(선조)이 왕위를 계승한다. 그런데 왕릉에만 쓸 수 있는 능호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링크를 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덕흥대원군묘가 덕릉이 된 사연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답글삭제흥국사...
오래전, 저의 집사람과 결혼하기 전
이 흥국사를 함께 찾아가 기도를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큰스님과 차도 한 잔 함께 나누며 법담도 나누었구요...
님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편안한 오후시간 되시기 바랄게요.^^
풍성한 추석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답글삭제글을 읽고보니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멋진곳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산에서 그리 멀지도 않는 유서깊은 사찰을 아직 가보지 못했네요. 울 가을에는 가보고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답글삭제@뽀키
답글삭제예전에 가보신 곳이군요.
하늘이 맑고 청명하네요.
@skypark
기회되시면 한번 들러보세요..
@mark
일산에서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은 곳들이 너무 많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