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11
구 러시아 공사관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정동극장을 지나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화여고와 맞은편 예원학교가 나온다. 덕수궁(경운궁), 미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 등이 위치한 중구 정동(貞洞)은 원래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하지만 현재 왕후의 릉은 정동이 아닌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태종에 의해 릉은 지금의 위치로 이장되었고 정릉에서 정동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
예원학교 담장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백색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구 러시아 공사관 건물이다. 조선말 아관파천이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조선말 조로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 직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다. 르네상스식의 우아한 2층 벽돌집으로 스위스계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하였다고 한다. 2층 벽돌조 본관은 한국전쟁시 파괴되었고 현재 3층 규모의 탑만이 남아있다. 탑의 동북쪽에 있는 지하 밀실의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지하 밀실은 비밀통로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구 러시아 공사관(Former Russia Ligation)
실제 아관파천이 일어난 곳은 덕수궁 돈덕전이라는 기사도 있는데 어느 것이 역사적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고종과 왕세자(순종)는 궁녀들이 타는 가마를 타고 경운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갔다고 한다. 아관파천은 한마디로 조선의 국왕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간 일이다. 1897년 환궁하여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지만 이미 조선은 꺼져가는 불꽃이었다.
관련자료: 두산대백과 아관파천
10,2011
환구단 황궁우
소공동에 위치한 환구단은 원단이라고도 한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단이다. 조선의 26대 국왕인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를 지낸 후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곳이다. 황제국인 중국의 북경에도 천단이 있다. 1913년 일본은 환구단을 헐고 총독부의 철도호텔을 세웠다. 1967년 지금의 웨스틴 조선호텔이 된다.
잔디밭에 나무를 심고 돌로 장식을 했으며, 본래 있지도 않았던 해시계와 야간조명용 석등까지 줄지어 세워 놓았다. 전형적인 일본식 조경으로 흙을 반듯하게 깔아 만든 우리 전통 정원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5,2011
환구단 석조대문
지금은 황궁우(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석조대문, 석고(돌북)만 남아 있다. 석고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3개의 아치로 된 석조대문 뒤가 신세계그룹 소유의 웨스틴 조선호텔이다. 환구단이 마치 호텔에 딸린 정원처럼 연결되어 있다.
한겨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조선호텔 재건축 당시 철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존재 자체가 잊혀졌던 환구단 정문은 2007년 8월 강북구 우이동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그 뒤 문화재청이 서울시에 환구단 인근의 시민광장으로 이전해줄 것을 요청해 시와 중구청은 2009년 3월부터 15억여원을 들여 복원 공사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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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천단공원 황궁우 |
중국의 천단과 비교된다. 외형적으로 천단의 기년전과 황궁우는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인데 환구단의 황궁우는 팔각 지붕이다. 북경의 천단은 시민들의 공원이다. 하지만 서울의 환구단은 도심 호텔 들 사이에 묻혀 있어 잘 알지 못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도 많지 않다.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고 한다. 환구단에 가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