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늦가을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평일이라 관람객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박물관 주변은 울긋불긋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이 곳을 찾으면 가장 먼저 호수를 배경으로 박물관 전경을 둘러보는 것이다.11,2010
국립중앙박물관/용산
지난 1994년경 처음 박물관을 방문했을때는 지금은 헐리고 흔적도 없는 경복궁에 있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위치했었다. 그 이후 2005년 현재의 위치(용산가족공원)로 이전 개관했다. 박물관 가는길 담벽에 미국정부 소유지라는 안내표지가 붙어있다.
용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천혜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1908년부터 조선주차군(일본군 사령부)이 위치했었고 해방이후 미8군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이 곳으로 이전했다는데 풍수까지 고려했는지는 확인하질 못했다.
박물관은 긴 복도와 높은 지붕으로 시원한 느낌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박물관 1층 복도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원랑선사(?~866)의 행적을 기록한 월광사원랑선사탑비가 서 있다. 탑비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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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군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터에 전해오던 탑비로, 1922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원랑선사(?∼866)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랑선사는 문성왕 18년(856)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물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이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려, 김영에게 비에 새길 글을 짓게 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의 해서체로 순몽이 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형식화된 조형이다. 머릿돌에 새긴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다.
전체적으로 탑비의 머리·몸·받침 각 부분의 비례감이 훌륭한 비로서, 단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원랑선사가 돌아가신 후 진성여왕 4년(890)에 세워졌다. <출처: 문화재청>
원랑선사탑비를 뒤로하고 국보 제86호 경천사십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우리 문화재 수난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 탑은 그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은 이 곳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11,2010
경천사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탑의 일본 밀반출과 국내 반환에 관한 한 편의 드라마같은 내용은 이구열 지음 '한국문화재 수난사'에 자세히 나와 있다. 경천사십층석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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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새로 개관한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11,2010
경천사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11,2010
그리스의 고대 청동 투구/국립중앙박물관
3층의 기증전시관에는 특별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손기정 투구'로 알려진 이 투구는 그리스 아테네 브라드니 신문사가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 주려 했으나 전달되지 못하고 50년간 베를린의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지난 1986년 손기정 옹에게 전달되었다. 손기정 옹은 이를 지난 1994년 국가에 기증했으며 정부는 서양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했다.
마지막으로 3층의 조각 공예관에는 불교조각, 금속 및 도자공예를 전시하고 있다. 이 곳에 들어서면 알 수 없는 묘한 두려움이 든다. 예전 총독부 박물관에서도 그랬는데. 여기서도 그랬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래 사진은 기억에 남는 석조불상이다.
11,2010
석조비로자나불(통일신라,9세기)
석조비로자나불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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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은 온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 나라에서 비로자나불상은 6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둥글고 친근감 있는 현실적인 얼굴, 계단 모양의 규칙적인 옷주름, 둔화된 돌섬에 비해 오히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광배와 배화로 보아 통일신라 후반기 석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규모가 커서 1,2시간의 짧은 시간에 많은 유물을 보지는 못했다. 다음에 다시 한번 들러서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한 가지 덧붙이면, 최근 이 곳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G20 정상회의 만찬행사가 있었다.
여기 세계 여러나라의 전시물도 있어서 좋은거 같네요.
답글삭제일년에 한번정도 찾아주면 좋을듯^^
가을엔 이런곳을 둘러보는것도 참 좋은데, 잊고 있었네요.
답글삭제경주에도 박물관이 있는데, 가끔씩 들려보면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서울가면 꼭 한번 들려보겠습니다.^^
@큐빅스 - 2010/11/12 11:24
답글삭제시간이 되면 자주 가고 싶은데 그렇게 되질 않네요..
저도 2005년 개관 이후 두번째 방문이었어요..
@skypark - 2010/11/12 14:45
답글삭제그러고 보니 경주에도 국립박물관이 있네요..
거기도 언제 한번 가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