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늦가을 광릉에서

정희왕후릉에서 본 광릉과 조산

11,2011
광릉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은 조선 7대왕인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릉이다. 광릉은 봉선사와 국립 수목원 중간쯤에 위치한다. 왕릉은 홀수날 왕후릉은 짝수날에 올라갈 수 있다. 방문한 날은 짝수날이라 왕후릉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조선의 많은 왕릉 중 광릉을 찾은 이유는 태조의 건원릉과 더불어 명당에 위치한 왕릉으로 알려져 있으며 릉의 주인이 세조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왕권의 정통성을 위해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게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는  27명의 국왕 중 7명에 불과했다. 또 이들을 포함해 하자없이 왕위를 계승한 왕은 10명이었다. 계유정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도 명분이 없었다. 


조카인 단종과 동생들의 피를 뿌리고 왕위에 오른 그가 죄업을 씻기 위해  불교에 의지했다고 한다. 세조는 양주 회암사, 여주 신륵사, 양평 수종사,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건봉사·표훈사·유점사, 양양 낙산사 등 수많은 절을 창건하거나 중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조가 불교 중흥에 힘쓴 가장 큰 이유는 신권을 견제하여 왕권을 강화할 목적이라고 학계는 보고 있다. 


광릉이 다른 왕릉과 다른 점은 세조의 유훈으로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참도가 없다. 참도 옆에 있어야할 배위도 없다. 홍살문도 원래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릉원 형식에서 최초의 동원이강릉으로 서로 다른 언덕에 왕릉와 왕후릉이 조성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하트모양 형태이다. 백성의 노역을 줄여야 한다는 세조의 유훈으로 봉분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고 석실과 석곽 대신 회격(관과 광중 사이를 석회로 다짐)을 사용했다. 

대개 왕릉 주변에는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는 왕릉을 대표하는 수종으로 왕의 장수와 권위를  상징하며 푸른 소나무의 영속성이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왕릉의 숲 조성은 소나무 외에도 떡갈나무와 오리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떡갈나무는 봉분을 보호하고 산불을 막는 역할을 했다. 지대가 낮은 홍살문 주변에는 습지에 강한 오리나무를 심었다.


540년 이상 광릉을 포함한 광릉숲은 풀 한포기 손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잘 보존되어 왔으며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 지역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왕후릉에서 바라보면 풍경이 좋다. 광릉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왕위도 빼앗고 명당도 빼앗고 덕분에 후손들은 발복해서 이후 왕들은 모두 세조의 후손이었다.
광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정희왕후릉
정희왕후릉의 문인석

정희왕후릉의 무인석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곡장



석양과 석호

문인석과 석마(둔부의 총탄 자국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이 보인다)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의 귀면

세조릉

광릉의 가을

붉게 타오르는 광릉의 단풍

댓글 4개:

  1. 가을사진이라 운치있고, 깊이가 있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으네요.^^
    광릉의 역사적 의미를 한눈에 볼수 있도록 올려주셔서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답글삭제
  2.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색감이 너무 좋으네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답글삭제
  3. 지난 10월27일 30여년만에 이곳을 가봤는데 감회가 깊었습니다. 30년 세월이 후다닥 지나간게 그세월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답글삭제
  4. @skypark
    저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뽀키
    좋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mark
    정말 오랜만에 다녀오셨네요.아주 특별한 느낌이었겠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