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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2015년 마지막 지리산 산행이 아닐까. 지리산 노고단에서

11, 2015
지리산 노고단


지리산 산행, 

성삼재에서 안개를 헤치고 노고단 대피소로 향한다. 새벽에 하늘 빼곡히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날은 비가 그치고  파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산불방지를 위해 12월중순까지 지리산 주요 등산로가 폐쇄된다고 한다. 올해 마지막 지리산 산행이 된 셈이다.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지리산 화엄사

10,2014
지리산화엄사


아주 오랜만에 화엄사를 방문했다. 10여 년 전 쯤 순천의 송광사와 함께 구례 화엄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입구 돌담 공사를 하고 있다. 주요 건물인 각황전, 석등,석탑 등은 그때와 달라진게 없다.


각황전 앞 6.4m 거대한 석등은 여전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석등

화엄사 각황전과 석등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야생은 처절하다. 말라위, 물위의 전쟁을 보고

지리산 염소들

지리산 염소

10,2007, 지리산

Canon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 사자를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말라위 물위의 전쟁

 

초원의 제왕이라는 사자도 풀을 뜯어 먹고, 물도 먹잇감도 없으니 사람 사는 지역까지 넘어가서 기르는 양, 소들을 공격해서 굶주린 배를 치우려 한다. 심지어 닭도 잡아 먹는다.

 

아프리카 말라위라는 곳의 건기의 상황이다. 우기에는 좀 덜하지만 건기, 특히 건기의 마지막인 10월경은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한다. 호수와 강도 말라 버리고 굶주림에 지친 야생 사자들이 마을까지 습격한다.

 

나레이션에서는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리는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도 함께 나온다. 사자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돈다.

 

사진은 지리산 청학동 인근에서 풀 뜯고 있는 염소들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섬진강 물결따라, 참게장의 고장 하동을 가다

섬진강 물결따라, 하동(河東)을 가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에~~

노래로 너무 잘 알려진 화개장터의 고장, 경남 하동은 위로는 남도의 푸근한 어머니 같은 지리산을 머리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물줄기를 통해 전남 구례와 자연스럽게 나뉜다.

십리 벛꽃길로 유명한 쌍계사, 차 시배지로 알려진 악양면(악양의 차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그리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자 무대인 평사리 최참판댁 등이 우선 떠오른다. 최참판댁은 새로 복원되어 건물 자체의 옛스러운 멋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보다는 참판댁 누마루에서 펼쳐 보이는 평사리 들판의 풍경이 그만이다. 아래는 이전에 올렸던 사진이다.

최참판댁에서 내려다 본 평사리 들판

최참판댁에서 내려다 본 평사리 들판

10, 2005
F5, Kodak Gold 100

하동의 너른 모래벌판을 만들어 낸 섬진강은 남해로 흘러간다. 섬진강의 원래 이름은 다사강이었는데, 섬진강으로 바뀐건 고려 말엽 우왕 때(1385년경)로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다. 광양만과 섬진강에도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였다. 한번은 왜구들이 하동 쪽에서 강을 건너려 하였다. 그 때 진상면 섬거에 살던 수 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들어 진을 치고 울부짖는 통에 왜구들이 놀라 도망치는 바람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전남 광양군 다압면 섬진마을 '섬진강 유래비') * 섬진강(蟾津江)의 섬(蟾)은 '두꺼비 섬'자이고, 진(津)은 '나루 진'자이다. 즉 나루터에 두꺼비가 나타난 강이라고 하여 섬진강이라고 했다는 설명이다. 섬진강의 유래가 하동군청 웹사이트에도 이미지로 나와 있다. 섬진강 두꺼비 전설

섬진강은 예로부터 물이 맑기로 유명해 제첩, 참게 등이 많이 잡혔다. 예전에는 섬진강 제첩을 마산, 부산까지 팔러 나갔다고 한다. 어릴적에 낙동강의 제첩국은 여러 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뽀얀 국물이 무척이나 시원했던 기억인데, 이 곳 제첩국은 먹어 보질 못했다. 섬진강의 참게장은 비릿함도 별로 없고 맛이 그만이다. 비위에 맞지 않아 밥도둑이라는 간장 게장은 먹지를 못하는데 이곳 참게장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마찬가지로, 이전에 올렸던 사진.
하동 섬진강 참게장

맛깔나 보이는 하동의 섬진강 참게장

10, 2007
Canon Ixus

그리고, 하동은 대봉감으로도 유명하다.  도로(하동에서 진주 방향)를 따라 가다보면 도로가에 대봉감 파는 집들(노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대개 대봉감 농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가게들이다. 지금쯤이면 감 수확시기도 끝나고 신선한 대봉감을 맛 볼 수 있을 것 같다.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구름과 새의 집

10,2005
F5, Kodak 100, 운조루


전남 구례의 운조루(雲鳥樓),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2008년 10월 15일 수요일

하동 평사리에서

10,2005
F5, Kodak 100, 평사리


경남 하동 평사리, 소설 토지의 배경
복원한 최참판댁 건물보다 보이는 평사리 논이 평안하고 정겹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