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4일 수요일

무지개가 있는 섬 하와이, 네번째 이야기

한달동안 오아후 섬 이곳 저곳을 다녔다. 지난번 놀쇼(North Shore)에 이어 이번엔 오아후 섬 남동쪽으로 간다.

이 곳은 하와이 카이(Hawaii Kai)지역으로 주요 명소는 코코 헤드(KoKo Head Crater), 하나우마 베이(Hanauma Bay),마카푸 포인트(Makapu'u Point) 등이 있다.

코코 헤드는 화산의 분화구로 현재는 활동하지 않고 있다. 약 10,000년전 오아후섬에서 일어난 화산폭발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코코 헤드 분화구에 철길을 놓아 무기 등을 운반하는 길로 사용했다고 한다. 정상까지 가려면 30분 이상이 걸린다고 해서 올라가진 않았다. 정상에서는 하나우마 베이와 주변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태평양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하나우마 베이는 하와이 여행을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다. 하와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스노클링하기 좋다고 한다. 갈라진 한쌍의 화산호 가운데로 바다물이 들어와 만들어진 이곳은 2,000ft 길이의 해변가가 굽어져 있으며 '하나우마'는 '굽혀진' 또는 '팔씨름을 하는'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 '굽혀진 만'이라는 뜻은 이 비치의 모양을 보고 생긴 이름이고, '팔씨름 하는 만'이란 예전 오아후 섬의 귀족들의 놀이터로서 이곳에서 팔씨름을 즐긴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카푸 포인트는 오하우 섬 동쪽 끝으로 하이킹 코스로 인기가 많으며 해안 절벽과 바닷가의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겨울에는 고래보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1909년에 만들어진 14미터 높이의 등대가 자리잡고 있어 선원들의 항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서쪽에서 호놀룰루로 들어오는 선박을 안내한다.

가는 도중에 하나우마 베이 근처 식당가에 들러 점심을 먹는다. 하와이에서 유명한 테디스 비거 버거(Teddy's Bigger Burgers)를 먹어 보기로 한다. 사진에서처럼 크기가 국내에서와는 비교가 안 된다. 크기 뿐만 아니라 맛도 좋은 편이다. 두툼한 패티가 살짝 보인다. 치즈도 넉넉하다. 한편 생각하면 미국인들에게 비만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테디스 비거 버거(Teddy's Bigger Burgers)

해안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조용한 비치들도 보이고 전망대(lookout)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쉬어 가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는다. 이 곳의 비치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고 한다. 도착한 곳은 와이마날로 지역으로 하와이 대학(UH Manoa)의 마카이 리서치 피어(Makai Research Pier)가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파도 에너지와 다른 환경 변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침식에 대해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바다 낚시를 시작해 본다. 낚싯대 잡아본지 오랜만이다. 예전 어릴적 아버지따라 낚시도 다니곤 했었는데 그리 재미를 붙이진 못했다. 놀쇼 가이드 해준 그 친구가 낚시를 아주 좋아한다. 낚시 도구를 모두 준비해 왔다.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버킷을 보니 물고기도 여러 마리 잡혀 있었다.  


마카이 리서치 피어(The Makai Research Pier)

낚시 던지자 곧 가이드의 낚싯대에 뱀장어가 잡혔다. 현지인들이 뱀장어를 먹긴 하는데 이 뱀장어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고기도 잡았다. 뱀장어는 미끼로 썼다. 이후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처음 잡힌 뱀장어 때문이라고 한다.

마카이 리서치 피어에서의 낚시
한참 지나 관리인(?)이 오더니 개는 안 된다고 한다. 안내문에 개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냥 데리고 들어 왔었다. 곧 돌아간다고 얘기하고 나왔다. 

가는 동안에는 잘 보지 못했던 해안의 절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카푸 포인트에는 바닷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빨간 지붕의 하얀 등대가 두드라져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 카이 타운 센터의 식당가에 들러서 커피 마시며 쉬어간다. 하와이 카이에서는 바다가 호수처럼 보인다. 만처럼 휘어져 있어서 그렇게 보인다. 이 지역은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한다. 사진에서처럼 집들은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독(Dock) 시설이 갖춰져 있다.

호수처럼 보이는 바다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그만이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하와이에 와서 바다는 실컷 봤는데 실제 바다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나우마 베이에서 스노클링도 할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치고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에서도 와이키키에서도 물 속엔 들어가질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하와이 카이(Hawaii Kai)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스테이크(양지 등 소고기) 콤보를 주문해서 먹었다. 롤도 있었는데 바싹바싹 맛이 괜찮았다. 오하우 섬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수락산 자락 서계종택과 노강서원

수락산 서계종택
08, 2011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자락인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예전의 양주군 석천동)에는 서계종택(반남박씨 서계공파 종택)과 서계선생과 관련된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서계의 부친인 박정이 인조반정의 공신 책록으로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이다. 종택 정문에 개조심이란 문구가 뜽금없다 싶은데 옆으로 돌아가면 개집에 백구가 한 마리 있다. 진돗개로 보여지는데 처음에 사납게 짖더니 조금 지나니 조용해진다.서계고택은 서계의 5세손이 지은 건물로 사랑채만 남고 다른 건물들은 한국전쟁에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종택에서 인상적인 것은 마당에 심어진 은행나무. 수령 400년이 넘은 이 나무는 의정부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건물은 좌향이 서쪽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남향이 일반적인데 아마도 사랑채 정면으로 보이는 도봉산의 주봉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택 뒤로 올라가면 종중의 묘택들이 보이고 좀 더 올라가면 서계묘역도 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올라가는 길 곳곳이 물고랑이 깊게 패여있었다. 다행히 묘역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서계종택에는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주중에 일반인 관람이 가능하다. 문화해설사들이 고택에 대한 자세한 설명해 주는 모양이다. 

참고: 서계문화재단

서계(西溪) 박세당은 인조 7년(1629) 반남박씨 박정의 네째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현종,숙종대의 유학자이자 중농주의 실학자로 실제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색경으로 유명하다. 서계선생의 대표적인 저술인 '사변록'의 원래 명칭은 통설(通說)이었다. 대학, 논어,중용, 맹자, 상서, 시경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는데, 특히 대학과 중용에 대한 견해가 독창성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하지만 후일 이 책으로 인해 당대 주류였던 노론으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려 유배되고 후학 이인엽의 상소로 해배되어 돌아온지 3개월만에 숨진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유교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비난하여 일컫는 말로 조선 후기, 당시의 집권층이었던 노론(老論)이 정적인 남인(南人)·소론(少論)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명분으로 쓰였다. 서계는 이경석, 박세채, 남구만 등과 함께 소론이었다.

하지만 박세당이 죽음에 이른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한다. 백헌(白軒) 이경석 신도비문과 관련이 있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 17년(1639) 청 태종의 요구로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가 세워진다. 백헌이 삼전도비문을 썼다. 이후 우암 송시열은 비록 청의 요구로 비문을 쓰게 되지만 아첨하고 기쁘게 하는 데 신경쓰며 비문을 쓴 것이라고 백헌을 공격했다. 당시 백헌은 송시열의 이런 비난에 직접 대응 하지 않았다. 숙종 29년(1702) 백헌 사망후 그의 비문을 박세당이 쓰게 된다. 비문에서 이경석을 노성인(老成人), 송시열을 상서롭지 못한 인간(不祥人:불상인)으로 비유했다. 또한 이경석을 군자의 상징인 '봉황'으로 송시열을 그 봉황을 모욕하는 '올빼미'로 풍자하기도 했다. 이에 노론은 발끈했다. 영수인 송시열을 모욕했다고 생각한 노론 일파들은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참고: 백헌 이경석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알고 보면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수락산에는 오세신동으로 알려진 매월당(梅月堂) 김시습과 관련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매월당은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전국을 떠돌게 된다. 처음으로 은거한 곳이 수락산 동봉이었다. 매월당의 다른 호에 동봉(東峰)이 있다. 박세당은 자신의 호를 서계(西溪)라고 했다.

참고: 매월당 김시습

청풍정유지
종택에서 조금 올라가면 청풍정 유지가 나온다. 서계선생이 매월당을 추모배향하기 위해 청절사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만들어 유생들과 학문을 강론했다고 한다. 맑은 바람을 뜻하는 청풍은 김시습의 맑은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한다.지금은 주초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서계는 집 주변의 샘을 석천(石泉)이라 하고 동네이름을 석천동(石泉洞)이라 부르고 바위에 石泉洞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외에도 서계가 즐겨 찾았다는 취승대(聚勝臺)와 처남인 남구만이 쓴 수락동천(水落洞天), 넓은 바위에 새긴 서계유거(西溪幽居)와 같은 암각서들이 남아 있다. 또한 서계가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궤산정이 근래에 보수되어 남아있다.

청풍정 유지 맞은편에 노강서원이 나타난다. 노강서원은 서계의 둘째아들인 정재(定齋) 박태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재 박태보는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때 인현왕후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가는 도중 노량진에서 순절하였다. 노강서원터가 옛 청절사가 있던 곳이다.

노강서원
 학문에도 깊고 성품도 강직한 분으로 알려졌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숙종 21년(1695)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23년(1697)에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노강'이라는 편액을 받았다.

노강서원을 지나 10여분 산길을 오르면 석림사가 나온다. 범종각이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이 보인다. 현판은 한글로 큰법당이라고 씌여져 있다.

수락산 석림사

2011년 8월 4일 목요일

무지개가 있는 섬 하와이, 세번째 이야기


North Shore
호놀룰루 시내에서 벗어나 북쪽 바다로 향한다. 하와이는 사면이 바다인 섬이다. 그래서 우리의 동서남해와 유사한 이름이 있다. North Shore, South Shore, East Shore, West Shore가 그것이다. 그 중 North Shore(놀쇼)는 서핑의 메카라고 한다. 특히 겨울철엔 파도가 높아 서핑의 최적 시기라고 한다. 

겨울철, 와이아메아와 파이프라인, 선셋 비치의 놀쇼는 서퍼들의 천국이다. 11월부터 2월까지 빅 웨이브 시즌에는 전세계에서 서퍼들이 몰려 온다고 한다. 서핑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겨울 시즌에 꼭 가보고 싶다.


North Shore를 가려면 H-1 하이웨이를 타고가다 H-2 하이웨이를 거쳐 80,99번 도로를 지나 마지막으로 83번 카메하메하 하이웨이로 1시간 30분 이상을 가야 한다. 이 지역은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분위기다. 도로가에 위치한 돌 플랜테이션에 잠시 들러 구경하고 다시 길을  나서면 광대한 파인애플 농장이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이 지역에서는 야생의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차를 세우고 비치에 내려가 본다. 바다 거북이들이 물에서 나와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한다고 하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North Shore에 가면 꼭 먹어 봐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새우 요리다. 죠반니(Giovanni's Scampi) 쉬림프 트럭이 원조라고 한다. 일회용기에 새우 12마리와 밥 2 스쿱, 레몬 한 조각이 올려져 나온다. 새우는 꼭 12마리만 준다고 한다. 가격이 13불 정도 된다. 새우 한 마리에 1불인가. 가이드 해 준 아내의 친구 말로는 가격이 좀 올랐다고 한다. 갈릭 향이 많이 나지만 약간은 느끼 할 수도 있다. 아내가 준 새우 몇 마리를 더 먹었다. 갈 때마다 가게가 업그레이드 된다고 한다. 트럭 때문에 선물가게도 생겨나고 처음엔 손 씻는 곳도 없었는데 새로 만든 거라고 한다.


죠반니 쉬림프 트럭

Giovanni's Scampi
돌아 오는 길에 하와이 민속 마을인 할레이와 타운(Haleiwa Town)에 들러 커피 갤러리에서 바나나 커피를 맛 본다.

커피 갤러리(Coffee Gallery)

유명한 선셋 비치에서 해넘이도 보고 1박을 하면 더 좋았을텐데 시간과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