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8일 금요일

한겨울 성균관 나들이

평일의 성균관 명륜당은 한산하다. 경내엔 관람하러 온 한 가족이 유일하다. 대성전 출입문은 잠겨 있는데 오늘은 열려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 그대로 쌓여있다. 성균관의 상징인 은행나무 두 그루는 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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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성균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6m, 가슴높이 둘레 12.09m에 이르는 웅장한 나무로 가지 발달이 왕성하고, 유주(乳柱)가 잘 발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문묘(文廟)의 명륜당(明倫堂) 경내에 서 있는데,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성균관(成均館)

조선 개국후 태조는 오늘날의 국립대학격인 성균관을 세운다. 이 곳의 지명은 '가르침을 숭상한다'는 뜻의 숭교방(崇敎坊;오늘날의 명륜동,혜화동 일대)이었다. 마로니에 공원이 위치한 현재의 동숭동은 숭교방 동쪽에 있다는 의미다.

성균관은 인재양성을 위한 유학교육기관으로 그 기원은 중국의 주(周)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자의 도읍에 설치한 벽옹이나 제후의 도시에 설치한 반궁(泮宮)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선 고려의 국자감(國子監)이나 신라의 국학(國學), 고구려의 태학(太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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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문묘

며칠 전 내린 눈이 지붕에 그대로 쌓여있다. 앙상한 가지위에 새 집이 또렸하다. 사람 다닐 수 있도록 눈을 치워 놓았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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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문묘
대성전 현판

원래 이름은 대성전(大聖殿) 이었으나 단종때 대성전(大成殿)으로 고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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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성균관

명륜당을 포함한 성균관과 문묘는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문묘와 성균관은 보물 141호로 지정되어 종로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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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각/성균관

존경각은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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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성균관


문묘(文廟)

서울 문묘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우고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것을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었으나, 이 역시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다. 현재의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묘는 대성전을 비롯한 동무·서무 등 제사를 위한 공간인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동재·서재 등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명륜당 구역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은 선조 34∼35년(1601∼1602)에 지은 건물로,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두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중국 건축 기법을 느끼게 한다. 대성전 앞에 마주해 있는 동무와 서무는 공자의 제자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선조 36∼37년(1603∼1604)에 세웠다. 동무와 서무 끝에서 시작하여 주위로 담장을 둘러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구역을 나눈다.

교육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은 대성전의 뒤편에 위치해 있는데, 선조 39년(1606)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중당과 양옆에 있는 익실로 구분하는데, 중당은 옆면에서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익실은 팔작지붕으로 중당보다 조금 낮게 구성되어 위계(位階)를 나타내 주고 있다. 지붕과 처마의 높낮이와 전체적인 건물의 균형이 우리나라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명륜당 앞에 마주하여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동재·서재는 기숙사 공간으로 성균관(成均館)이라 알려져 있다.

서울 문묘는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며, 또한 건축사 연구의 자료로서 전통과 역사가 깊이 배어있는 곳이다.

자료 출처: 문화재청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의 성균관이 위치한 성균관대학교를 포함한 인근 지역은 대학로로 통칭된다. 예전 서울대가 위치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지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 대학로였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월 21일 금요일

천년세월을 지킨 용문사 은행나무

2011년 새해를 맞아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은행나무 보러 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절집내의 여러 건물과 석탑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이라 건축물 보다는 1100년을 지켜온 은행나무 보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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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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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관음전


새로 지은 팔각의 절집인 관음전은 독특하긴 한데 웬지 정자같다는 느낌이 들까. 원래의 관음전은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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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국사 부도

용문사에서 약 300m 떨어진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지국사(1324∼1395)의 행적 등을 기록한 것이다. 정지국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황해도 재령 출신이며 중국 연경에서 수학하였다. 조선 태조 4년에 입적하였는데 찬연한 사리가 많이 나와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부도와 비는 80m정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부도는 조안(祖眼) 등이 세운 것이며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4각이고 윗받침돌과 탑몸이 8각으로 되어 있어 전체적인 모습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기고, 북 모양의 가운데받침돌에는 장식없이 부드러운 곡선만 보인다. 탑몸에는 한쪽 면에만 형식적인 문짝 모양이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아래에 3단 받침이 있고, 처마 밑에는 모서리마다 서까래를 새겼다. 지붕돌 윗면에는 크게 두드러진 8각의 지붕선이 있고, 끝부분에는 꽃장식이 있는데 종래의 형태와는 달리 퇴화된 것이다. 꼭대기에는 연꽃 모양의 장식이 놓여 있다.

비는 작은 규모의 석비로 윗부분은 모서리를 양쪽 모두 접듯이 깎은 상태이고, 문자가 새겨진 주위에는 가는 선이 그어져 있다. 비문은 당시의 유명한 학자인 권근(權近)이 지었다. 처음에는 정지국사부도에서 20m 아래 자연석 바위에 세워 놓았는데, 빠져 나와 경내에 뒹굴고 있던 것을 1970년경 지금의 위치에 세웠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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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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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를 찾은 관광객이 기념사진(인증샷)을 찍고 있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 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부도 및 비와 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 천연기념물 제 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출처: 용문사

2011년 1월 13일 목요일

기원

01,2011
용문사/양평


예전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저 날짜 하루 바뀌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새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